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탈리아 파시즘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914년 [[이탈리아 사회당(1892년)|이탈리아 사회당]]에서 [[제1차 세계 대전]] 참전 여부를 놓고 당의 [[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]] 노선에 반대하면서 갈등을 빚고 탈당한 [[민족주의]] 성향의 사회당원들은 [[베니토 무솔리니]]를 중심으로 파시스트 혁명행동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였다. 전직 이탈리아 사회당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파시즘을 창설하였기 때문에 조반니 젠틸레 등을 위시로 하는 [[국가사회주의|국가사회주의자]]들, [[민족주의자]]들, 심지어 이탈리아의 일부 [[공산주의자]], [[아나키스트]][* 특히 [[무솔리니]]는 [[막스 슈티르너]]의 '유일자와 그 소유'라는 책을 읽고 정말로 혁명적인 철학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에 빠져들었다. 실제로도 그는 [[에리코 말라테스타]]와 같은 이탈리아의 아나코 코뮌니스트들을 [[독재자]]나 [[전체주의|전체주의자]]라고 말할 정도였었다.] 등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던 이 이탈리아 파시즘은 당시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던 [[미래주의]] 예술을 통한 젊음[* 사실상 미래주의에서 애기하는 젊음은 활력이다. 문제는 이 활력이 과거의 유산을 파괴하고 전쟁을 예찬하는 방향으로 가 버린 것이며 그 외에도 이탈리아 미래주의 예술은 파시즘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특히 무솔리니는 이 미래주의 예술을 자신의 선전에도 잘 써먹었다. 그의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예술(SISISISI라고 적혀 있는 파시즘 당사 등)들은 대부분 이 미래주의 기조에서 나왔으며 특히 미래주의의 창시자였던 마리네티부터가 이 파시즘에 기대를 크게 품기도 하였다.]의 맹신, 사회주의를 통한 [[협동조합주의]][* 이탈리아 파시즘은 가면 갈수록 소렐의 [[생디칼리슴]]에서 좀 더 국가의 영향력을 부여한 형태로 나아갔다. 소렐이 애기한 형태의 생디칼리슴은 아이러니하게도 [[팔랑헤]]당이 직계로 이어받았으며 노동자 자가관리 등을 내세웠다.], 국가의 적극적인 통제, [[군국주의]] 등을 들며 이탈리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. [[이탈리아인]]들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[[로마 제국]] 시절의 영토 회복을 강조하면서 [[스파치오 비탈레]]를 내세웠다. 그 결과 [[1921년]]에는 이탈리아 의회에서 37석을 확보하였고 [[국가 파시스트당]]으로 발전하였다. [[1922년]], [[로마 진군]]을 통해 국가 파시스트당이 집권하면서 [[파시스트 이탈리아]]가 설립되었다. 집권한 국가 파시스트당은 [[일당제]]를 통해 다른 정당들을 하루 아침만에 일개 불법 정치 조직으로 전락시키고 1928년에는 파시즘 대평의회(Gran Consiglio del Fascismo)라는 정부 기구를 만들어 독재 정치를 펼쳤다. 하지만 이 일 이후 파시즘은 기존 보수파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기존 지지세력이던 [[사회주의]]자, [[조합주의]]자, [[미래주의]]자등을 모조리 숙청, 탄압하면서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였고[* 특히 [[반유대주의]]적인 정책이 대표적인데 단눈치오로 대표되는 초기 파시즘은 반인종주의적 성격의 민족주의를 주장하였다. 실제로도 마리네티 등의 미래주의자들도 이탈리아의 반유대주의법 제정 당시 격렬하게 반대하였다.] 1936년에는 [[에티오피아 제국]]을 병합했고 1939년에는 [[알바니아 왕국]]을 [[보호령]]으로 만들어 본격적으로 팽창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. 이후 [[이집트 왕국]], [[그리스 왕국]], [[튀니지]] 등을 노리면서 [[제2차 세계 대전]]에 뛰어들었다가 1943년 패전하였고 1945년 [[이탈리아 사회 공화국]]마저 무너져 이탈리아 파시즘의 시대는 끝나 버렸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